칠월백중 우란분절과 천도재


「인생은 어디로부터 비롯해 태어났으며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태어남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음 역시 뜬 구름 사라지는 것과 같다. 뜬 구름이란 실체가 없는 것. 나고 죽음도 꼭 이와 같네. 오직 한 물건만은 홀로 뚜렷하여 생사를 따르지 않고 담염하다네.」

오늘은 천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천도라는 말은 불보살님의 위신력을 힘입어 삼악도에서 고통 받는 생명을 더 좋은 세계로 인도하는 의식입니다.

이 천도의식을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다른 종교는 윤회를 믿지 않고 오직 신의 섭리나 심판만을 믿기 때문에 천도라고 하는 말 자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도에 대해서 우리가 확실하게 이해하자면 먼저 윤회의 실상을 알아야 하는데 윤회란 우리 중생들이 천상, 인간, 지옥, 아귀, 축생, 수라의 여섯 갈래길을 마치 개미가 쳇바퀴를 돌리듯이 돌고 도는 현실을 일컫는 말입니다.

윤회는 달리는 생사윤회(生死流轉), 윤회전생(輪廻轉生), 유전(流轉), 윤전(輪轉)이라고도 하는데 중생들이 번뇌와 업에 의해서 삼계육도의 미(迷)한 생사의 세계를 그치지 않고 돌고 도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님들이나 불교서적에서 <생사가 둘이 아니다>거나 <생사가 본래 없다>고 하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윤회란 생사를 거듭하며 육도를 왕래하는 것을 말하고 지금 이 시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또 태어납니다. 그런데 <생사가 없다>고 하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생사가 없다는 말이 진실인가. 아니면 생사를 거듭하여 윤회하는 것이 진실인가? 범부 중생들의 눈으로 보면 분명 생사가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생사가 없다고 하는 부처님의 말씀이 틀렸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사를 거듭하여 윤회하는 물질적인 요소와 영원히 불생불멸하여 윤회하지 않는 근본생명의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에 있는 게송 가운데 뜬 구름과 같은 생사윤회의 모습이 있는가하면 <생사에 따르지 않는 한 물건>이 있습니다.

육신은 죽으면 썩어 없어지므로 윤회를 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짐승으로도 태어나고 천상인간으로도 태어나는 것은 육체가 윤회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윤회를 하는 주체는 육신이 아니라 바로 영원히 생사가 없는 바로 우리의 주인공입니다. 이 주인공은 절대로 태어남도 죽음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윤회의 주체가 되어서 천상에 태어나게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게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번뇌(煩惱)와 업(業)이라고 하였습니다. 번뇌란 정신작용이요, 업이란 행동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여러 가지의 번뇌와 망상, 또 우리가 일상생활 가운데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행위가 이 <한 물건>을 감싸고 다음 세상으로 윤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뚱이는 죽음의 순간에 무정물이 되어 버리지만 평상시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 행했던 업은 없어지지 않고 다음 세상으로 떠날 때 우리의 주인공인 <한 물건>을 감싸고 가는 것입니다.

중생이 육도에 태어나서 몸을 받는 것은 마치 나그네가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옷을 입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생전에 지은 업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단지 지금 이 몸만이 나의 전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뒤바뀐 생각이지요. 이 몸뚱이는 살아생전에는 소중하지만 숨 한번 멈추고 보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물질에 불과하게 되나, 보이지 않고 어디다 따로 기록해 두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들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서 다음 세상의 밑천이 되는 것인데 중생들은 거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몸뚱이는 위할대로 위하면서도 마음을 살찌게 하는 일은 게을리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몸뚱이를 위하느라 온갖 수단을 다하여 재산을 모읍니다. 그러나 재산이란 것도 다음 세상에 갈 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전생의 일을 알려거든 금생에 내가 받은 것을 보고, 내 생에 어찌될까를 알고 싶으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라.” 하셨습니다. 박복한 사람, 남보다 더 노력을 해도 잘 안 되는 사람은 전생의 업력이 좋은 면보다는 나쁜 면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단지 우리 인간계의 모습에서만이 아니라 육도(六道)에 태어나는데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만일 악한 업을 많이 지으면 지옥에 떨어지거나 아귀나 축생의 몸을 받게 되고 선한 업을 많이 지으면 천상이나 인간, 아수라도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인 <한 물건>, 즉 불성(佛性)은 똑같지만 불성을 감싸고 가는 옷에 해당하는 업이 하늘사람 되기에 적당하면 하늘사람이 나는 몸뚱이를 받게 되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만하면 사람으로, 지옥에 가야 할 사람이면 지옥, 짐승 같은 사람은 짐승의 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업자득이요, 인과응보의 엄연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생명을 위해 천도를 한다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천도(薦道) 천란 악도의 중생을 악도에서 선도로 이끌어내는 것을 말하는데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 엄연한 인과법칙 아래서 어떻게 부모나 자식 또는 일가친척이나 남이 다른 중생을 구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의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남을 대신 할 수 없다면 부모가 죽어서 49재를 지낸다거나 천도를 하는 것이 무슨 공덕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엄연한 자업자득의 현실이지만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상의상자(相依相資)의 관계 즉 서로 돕는 관계에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천도의 기원을 살펴보면 백중이라고도 하는 우란분재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미 여러분도 다 아는 사실이 되겠습니다만 우란분재는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해내기 위해 부처님에게 길을 여쭌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목련존자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갖은 고통을 당하다가 우란분재를 통하여 설법을 듣고 마음을 깨쳐 이고득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백중날이 되면 조상님들을 천도하는 법회를 열고 있습니다.

천도는 꼭 우란분재일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지극한 정성을 들이면 천도가 되는 것입니다. 조상이나 집안 식구들 가운데 악도에 떨어진 영가가 있는 경우는 거의 집안이 편안하지 못하고 가족의 꿈자리도 사납다고 하는데 이유는 천도를 바라는 영가가 고통을 호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도하는 대상은 단지 우리의 조상이나 인척이 지옥이나 아귀도에 떨어져 있는 경우만이 아니라 축생으로 태어나 고통을 받고 있는 경우도 있고 중음신으로 머물러 있는 경우도 해당됩니다.

중음신이란 사람이 죽은 후에 7일을 1기(期)로 다음 본생처에 태어나게 되는데, 만일 7일이 지났는데도 태어날 인연을 만나지 못하면 다시 7일이 연속되어 14일이 되어야 본생처에 태어납니다. 이 같이 7일을 1기로 삼아서 최고로는 7기 즉 49일이 되고 제7기가 끝난 때는 반드시 어느 한 곳에 태어나게 됩니다. 이 기간동안 천도의 힘으로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하는 의식이 바로 49재입니다.

그런데 특히 애착이 많다거나 한이 많은 사람은 49일이 지나서도 본생처를 찾지 못하고 허공중에 떠돈다고 하는데 이런 애혼들은 특히 살아생전의 혈육을 찾아 천도하여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합니다. 천도는 그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줌으로써 참회하고 불보살님의 위신력으로 선도에 태어나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와 인연 맺은 중생을 구제하는 공덕이 있습니다. 자기의 혈육의 고통을 외면하고 어찌 남을 구제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 같이 지극정성으로 애혼 영가들이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도록 불보살님께 발원합시다.